프로필
이명박 (1941.12.19 ~)
1941년 12월 19일 가난한 목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생활전선에 나섰으며, 김밥과 풀빵, 뻥튀기, 과일 등을 팔며 고학으로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빈손으로 상경, 달동네에서 일용노동자로 서울생활을 시작했으며,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책을 얻어 공부해 1961년 고려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던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녔던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64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민주화운동을 주도하여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대학 졸업 후 종업원이 100명도 되지 않던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입사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에, 만 35세 나이로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1977년 ‘샐러리맨의 신화’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대건설은 종업원 18만명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중국의 장쩌민 주석,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과 교류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CEO로서 국제적인 감각을 폭넓게 익혀 왔으며, 세계에서 3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연륙교), 당시 최대 규모 역사(役事)였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 등 열사의 나라에서부터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경영자로 자리매김 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4선인 이종찬, 청문회 스타인 노무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 2002년 7월 민선 3기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을 성공시키며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의 CEO로서 또 다른 신화를 창조해 냈다.
2006년 서울시장 퇴임 이후 ‘안국포럼’ 사무실을 열고 국내외 곳곳을 누비며 정책탐사를 하는 것으로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시작, ‘한반도 대운하’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 ‘대한민국 747’ 등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가시스템을 개혁하는 굵직굵직한 비전을 내 놓으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새로운 비전과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역과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범국민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치열한 경선을 거쳐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경험이 있는 경제지도자, 국제사회와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국제 감각이 있는 지도자, 희망과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천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48.6%의 득표율로 상대 후보를 역대 최다 표차로 따돌리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선진화의 원년을 선포하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 해인 2008년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그 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9년 또 다시 유럽발 재정위기를 맞이했으나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한 경기부양책을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펼친 결과 국제사회로부터 “교과서적인 경기회복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동안 3대 국제신용평가사의 국가신용평가등급이 모두 상승했으며, 국가부채 비율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높였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 대한민국은 세계 7대 수출대국으로 도약했으며, 45개국과 FTA를 체결, 경제영토가 세계 3위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서울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를 의장국으로서 성공적으로 주최했으며,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비전으로 선포하고 early mover로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를 설립해 국제기구화하고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본부를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9년, 2차대전 후 독립한 국가로는 유일하게 OECD 개발원조위원회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선언하는 등 임기동안 대한민국이 경제적 수준에 걸맞는 국격과 국제적 의무를 다하는 성숙한 세계국가로 도약하는 토대를 닦고자 애써왔다.
그의 삶은 최빈국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겹겹의 위기를 극복해 내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발전해 온 과정과 닮아 있다. 2013년 2월, 그는 5년 임기동안 “대한민국의 가장 행복한 일꾼이었다”고 평하며, 사랑하는 조국과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사드리고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따뜻한 축복을 보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1960 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 졸업
196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 연구원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박사
2005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2008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명예박사
2009 우즈베키스탄 세계경제외교대학 명예경제학박사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공공서비스분야 명예박사
2011 파리7대학 예술·문학·철학·고전학 명예박사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대학교 환경학 명예박사

1965 현대건설 입사
1977 ~ 1992 현대건설, 인천제철 등 10개사 대표이사 사장 회장(겸임)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1981 ~ 1992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84 ~ 1992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
1992 ~ 1998 제14, 15대 국회의원
1992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1994 ~ 2002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1999 ~ 2002 아·태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
2000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
2002 ~ 2006 제32대 서울특별시장
2008 ~ 2013 제17대 대통령

1982 체육훈장 백마장
1984 국민훈장 석류장
1985 금탑산업훈장
1986 체육훈장 거상장
1998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조선일보)
1999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전경련&매일경제)
2005 2005 세계의 인물 대상(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그룹 fDi 매거진)
2008 페루 대십자 훈장
2010 생물다양성협약 공로상 (CBD Award)
2011 제5회 UAE 자이드 국제환경상 / 세계 지도자상 (양심에의 호소 재단) / 덴마크 코끼리 훈장
2012 스웨덴 세라핀 훈장 / 콜롬비아 보야카 대훈장 / 인도네시아 아디뿌르나 훈장
2013 IOC 올림픽 대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훈장

신화는 없다 /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온몸으로 부딪쳐라 /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 어머니
The Uncharted Path / 대통령의 시간